'공갈 때리다'

우리 형법에는 '공갈죄'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형법 제350조).

여기서의 '공갈'이란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타인을 '협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이것은 '공갈'이란 단어가 갖는 본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법을 공부하기 전에는 '공갈'을 '거짓말'과 같은 뜻으로 알았습니다.

아마 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공갈'이라고 하였을 때 '협박'보다는 '거짓말'을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법을 공부하면서 형법상의 공갈죄를 알게 되었고, '공갈'의 의미에 대하여 다소간 궁금해 한 적이 있습니다.

왜 '공갈'은 '협박'도 되고 '거짓말'도 될까.

그 궁금증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니어서, 그냥 묵혀두다가 어느 새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책을 읽다가 우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공갈'은 '협박'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25 직전경 이승만 정부의 허풍과 거짓말로 인하여 '거짓말' 또는 '과장'이란 뜻으로 변용되었다고 합니다.

6.25 전 이승만은 기자회견 등에서 3일이면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북한을 위협하는 말을 남발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는 허풍이었습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은 6.25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아니 6.25가 벌어진 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6.25 발발 직후에는 노골적인 거짓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승만과 정부의 허풍과 거짓말로 인해 '공갈 때리다'는 새로운 말이 생겨났다.

원래 공갈(恐喝)은 협박의 의미였지만 거짓말 또는 과장이란 뜻으로 변용되었다.

이승만과 정부의 허풍과 거짓말이 워낙 심했던 탓이었다.

 

이승만과 정부의 '공갈 때리기'는 훗날 '6.25 유도설'을 낳게 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전쟁은 피하는 게 상책인데, 전쟁을 하기 위해 발버둥친 것처럼 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공갈 때리기'가 차라리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면 6.25가 한반도를 지옥으로 변모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그만한 대비책이 있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이승만과 정부의 '공갈 때리기'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러한 '공갈 때리기'는 남북 상호간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증오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공갈 때리기'의 정치적 효용도 바로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국민이 그러한 증오를 갖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증오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집요한 시도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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