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어제 수능이 있었다.

지진 때문에 갑자기 연기되었던 수능이었다.

해마다 수능 무렵이면 유난히 날씨가 춥다.

지금은 수능이 끝난 다음 날인데, 무언가 큰 행사가 끝난 다음의 여운 같은 것이 공기 중에 감도는 것 같다.

여유와 허탈이 뒤섞인 그 어떤 것.

매듭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기도 하겠지.

 

나는 14년 전 이맘 때쯤 수능을 봤었는데.

춥고 긴장되고 불안하고 초조했었는데.

그러면서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었는데.

수능 다음 날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가채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었었는데.

보다 못한 재용이가 대신 채점을 해줬었는데.

 

내가 수능을 경험한 이후에는, 수능 무렵이면 나는, 내가 이제 수능이라는 상황에서 벗어나 있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나는 그토록 긴장되고 초조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유지해야 하는 그런 수능을 넘어서 있구나.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이 안쓰러웠다.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이후 군대를 가고,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여러 어려움도 겪고, 실연도 당해 보고, 사법시험도 보았지만,

고삼과 수능 때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유독 수능을 힘들어 했던 것일까.

나는 경쟁이 두렵다.

가급적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살고 싶다.

사법시험도 물론 경쟁이었지만, 수능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경쟁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늘 경쟁의 연속이다.

서로 더 좋은 자리에 오르려는 경쟁, 서로 더 가지려는 경쟁.

세상에는 이렇게 집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입을 옷들도 많은데,

골고루 나누면 다 같이 잘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서로 경쟁하며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이라고 말했다는데.

여행하듯이 인생을 살 수는 없을까.

수능을 본 아이들은 이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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