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음의 역사, 그리고 미래 - 총균쇠를 읽고

 

 

20089월의 어느 밤이었다.

잠을 자던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깼다.

밖의 빗소리가 너무 커서 그 소리에 놀란 것이다.

천둥은 치지 않았다.

떨어지는 빗물들만으로 그렇게 큰 소리가 만들어 진 것이니 그 순간 정말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낙하한 것이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나는 그 시간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평온함을 느꼈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밖의 세상은 저렇게 처참한데, 나는 그 와중에 방안에 이렇게 편안히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고 한편으로 신기했다.

그 순간의 느낌이 너무 인상 깊어 나는 그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그 느낌을 짧은 글로 적어 보았다.

 

어느 깊은 밤

 

창문 밖 세상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잠이 깬 어느 깊은 밤,

나는 어느샌가 작은 섬나라 속 하나 있는 조그맣고 따뜻한 방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섬을 삼킬 듯한 범아가리 같은 시커먼 파도와 먼 옛날의 홍수 때처럼 사명감에 젖은 빗줄기 속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늑하다.

가늠하기 힘든 그 시각 그 방 그 이불 속 나는 비가 와서 행복하다.

그 옛날 동굴에서 살았던 나의 조상을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잠든다.

 

2008 9 21 

 

나는 그 때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산다는 것에서 감사와 기쁨을 느낀 것 같다.

문명이라는 단어는 한편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는다고 한다.

아마 문명이라는 말의 의미를 떠올리노라면, 그와 반대되는 것, 즉 미개나 야만을 떠올리게 되고, 이는 곧 문명을 주도한 민족의 우월주의에 대한 연상으로 이어져 그러하다는 것 같다.

가치중립적으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류의 발전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아무튼 나는 가끔씩 인류의 발전에서 비롯된 혜택을 누리며 산다는 것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평소에는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살듯이 그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대개 생각하지 못하지만, 살면서 문득문득 그것을 느끼는 순간을 맞을 때가 있다.

20089월의 어느 깊은 밤도 나에게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문명 내지 인류의 발전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를 보면, , 즉 무기와 병균과 금속을 갖게 된 민족이 인류의 발전을 주도하였고, 그들이 무기와 병균과 금속을 다른 민족보다 먼저 갖게 된 것은 남들보다 먼저 농경을 시작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경은 식량의 비축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는 먹거리를 구하거나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유휴 노동력을 창출하였으며, 그러한 유휴 노동력이 총쇠를 갖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먼저 농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지리적인 배경에 기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약간 다른 표현으로 바꿔 보자면, 인류의 발전은 남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 언젠가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도 남는 힘과 남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남는 힘과 남는 시간이 바로 문명을 탄생시키고 인류를 발전시켰다고 본다.

 

남음은 창조와 발전의 기초가 된다.

남음으로부터 정말 많은 것들이 파생된다.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인류의 문화가 발전하고 의식주가 개선되어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반면, 먼저 발전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학살이나 핍박, 같은 민족 내부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착취나 불평등 등은 부정적인 부분이다.

 

긍정과 부정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대체로 긍정적인 모습에서 좋은 감정을, 부정적인 모습에서 나쁜 감정을 느낀다.

인류의 바람직한 모습은, 남음으로부터 긍정적인 것을 창출해내고 부정적인 것은 필요최소한으로만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 남음으로부터 누가 봐도 기분 좋은 일이 파생되는 게 바람직한 인류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2002MBC에서 네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극중 고복수(양동근 분)는 젊은 나이에 뇌종양에 걸리게 되는데, 이를 안 고복수의 아버지(신구 분)는 자식이 암에 걸렸다는 슬픔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복수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슬픔을 안은 채 돌아다니다가 문득 어느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에는 어린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고복수는 갑자기 그 공을 뺏더니 아이들보고 같이 놀자고 한다.

아이들은 싫다면서 계속 고복수에게 공을 달라고 하지만 고복수는 끝까지 주지 않고, 결국 아이들은 공을 포기한 채 돌아간다.

돌아가는 아이들을 향해서 고복수가 외친다.

 

너희들 세상이 왜 있는 줄 알아? 세상은 다같이 모여서 재밌게 놀으라고 있는거야!”

 

양동근의 이 대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말이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 사람들이 다같이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만 행복한 것보다 내 주변 사람들,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이 더 바람직하게 보인다.

인류라는 것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을지, 혹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형태로 파악해야 할지 큰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나는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 즉 다같이 모여서 재밌게 노는게 아닌가 한다.

누구는 소외시키고 누구는 따돌리거나 하지 않고 다같이 어울리는.

 

다같이 행복할 수 있는 게 가능할까.

계속 노력하다보면 아주 먼 미래에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쯤에는 그 어느 누구도 오늘날 같은 세상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1만년 후의 세상을 거의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남음은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추구할 기회를 주었다.

남음으로부터 비롯된 발전들 속에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남음은 그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힘 또한 주었다.

그 힘으로 추구되는 것들 중 하나가 '평등'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평등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참 많이 있어 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

 

남음은 '총쇠'에서 나아가, 인류에게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이 아름다움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을 초창기로 봐야할 지도 모른다.

기원전 11000년경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농업의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쇠를 대신해 아름다움이 인류의 역사를 주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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