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언젠가 너는 지겨움이 두렵다고 말했어.

그 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

지겨움과 두려움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 후로 한참이 지났어.

이제 나는 지겨움이 두려워.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너는 알아선 안 되는 것을 너무 빨리 안 것인지도 몰라.

나는 너가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알아버린 것이 슬펐어.

너의 뒷모습을 보게 될까봐 두려웠어.

 

떠나기 전에 너는 내게 말했어.

떠나는 것을 늦추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나는 너를 붙잡았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었어.

 

너가 떠나고 나는 우산 하나를 잃어버렸어.

그깟 우산 하나가 뭐라고.

나는 그토록 마음이 아팠을까.

 

어느 날 나는 비에 흠뻑 젖었어.

그리고 너를 원망했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라고.

 

얼마 후 나는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너가 떠난 이유도 알게 되었어.

너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야.

 

이제 나는 지겨움이 두려워.

또 한 번 우산을 잃어버렸어.

그런데 이제는 비를 맞을 수는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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